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돌프 히틀러 (문단 편집) === 식습관과 혐연 === 젊은 시절에는 미식을 좀 즐겼고, [[제1차 세계 대전|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복무할 때에는 다른 데는 돈을 하나도 쓰지 않았지만, 더 맛있는 음식을 사먹을 때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서 동료들에게 [[먹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후술되어 있는 한프슈탱글의 증언 등을 봐도 알 수 있듯이 1920년대 이후 히틀러 특유의 식습관으로 바뀌었는데, 거의 청교도와 맞먹을 정도로 엄격한 식습관을 정립했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담배]]는 평생 피우지 않았던 [[금연]]을 넘은 '''혐연자'''였다. 부하들도 아돌프 히틀러의 앞에서는 절대로 못 피우게 해서 부하들이 싫어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흡연의 위험성 개념이 매우 약했던 시대[* 건강의 해악성 자체를 몰랐던 건 아니다. 중독성은 [[순조]] 시절부터 알려져 있었고(니코틴이 발견되기 이전이다.), 해악성도 미약하게나마 중독성과 연관지어 발견하기도 했다.]라 남성 흡연율이 매우 높았고 여성 흡연율도 높았던 시대다. 신앙이 깊거나 한 소수 경우 제외하면 고위공무원급이라면 거의 다 담배를 피웠고 계급 구별 없이 같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회의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런 인식은 히틀러가 죽은 후에도 바뀌지 않아서 연예인들이 공식석상에서 사진 찍을 때 보면 담배를 물고 있는 사진도 많고 집이나 차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오히려 금연자가 비주류 취급받던 시절이다. 영화 [[몰락(영화)|몰락]]에서 히틀러가 죽었다니까 젊은 장교들이 다같이 담배를 무는 코믹한 장면이 있을 정도다. [[트라우들 융에]]의 회고록에 의하면, 회의 중에 휴식시간을 가졌을 때 한 정치인이 아돌프 히틀러에게 담배를 권하며 [[개소리|"퓌러 각하, 담배는 우리의 몸을 소독시켜주고,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건강에 이로운 물건입니다."]]라고 말하자 아돌프 히틀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 생각해보게나, 흡연자들의 이가 누렇게 변하고 맨날 가래가 끓으며 운동할 때마다 폐활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입술과 피부는 죽은 사람처럼 어둡게 변하게 하는데 전혀 건강에 이로워 보이지도 않네. 게다가 [[유사과학|담배가 이롭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다네."라고, 지금 기준으로 봐도 꽤 상식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5/51/German_anti-smoking_ad.jpeg|당시 나치당에서의 금연 캠페인 포스터]] 나치당 해외공보실장을 지내고 아돌프 히틀러에게 사교예절을 가르치고 숙청되기 전 미국으로 망명한 에른스트 한프슈탱글은 후에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히틀러가 란츠베르크에서 석방되고 나서 [[와인]]과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먹어치웠다가 점차 배가 나오는 걸 경계해서 육식과 술을 멀리하기 시작했다고 구술했다. 그러니 술을 아예 안 마신 게 아니다. 맥주홀 폭동 당시의 증언들을 들어보면 아돌프 히틀러는 돌격대 앞에서 맥주를 완전히 들이키고, 잔을 바닥에 던짐으로서 모든 게 시작되었음을 상징적으로 알렸다. 그 후로도 어떤 비장한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돌프 히틀러는 종종 큰 라거잔에 든 맥주를 들이키고 그 잔을 바닥에 내던졌다. 이외에도 여기저기서 필요한 상황이거나 기념할 날에는 맥주나 와인 정도의 적당한 음주를 한 기록과 영상에도 발견된다. 에른스트 한프슈탱글이 밝히기로는 맥주집 폭동으로 수감하고 나서도 술은 조금 마셨다고 한다. 나중에 집권 후에도 알려진 것과 달리 식사 때는 소화를 돕기 위해 알콜 냄새는 지독히 싫어해도 코를 쥐어막고 '[[코냑]] 한 잔' 정도는 어쩔 수 없이 마셨다고 한다. 만성적인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그에게 [[주치의]] [[테오도어 모렐]]이 처방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 맥주는 독일인들이 술이라 여기기보단 물처럼 마시는 것이다 보니, 히틀러의 음주 습관을 논할 때 맥주는 빼고 얘기하기도 한다. 또 [[채식주의자]]로 [[고기]]를 잘 먹지 않고 식사도 적게 하는 등 일반적인 이미지에 비해 의외의 면이 많다. 다만 금주, 금연한 것은 약간의 [[정신병]]적인 '건강 염려증' 때문이었으며, 채식은 사실이나 최고급 식재료인 [[아스파라거스]] 같이 서민들이 상시 먹기 힘든 고급 채소류와 [[감자]][[요리]], [[파스타]] 종류를 주로 즐겼고, 단 음식을 매우 좋아했다. 육식을 완전히 끊은 건 조카딸 겔리 라우발이 1931년 자살하고 나서라고 알려졌다. 그 전까지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449&aid=0000041971|비둘기를 보양식으로 먹는 등]] 약간의 육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돌프 히틀러의 방에서 권총 자살했는데 육식할 때마다 그 이미지가 떠올라서라는 추정을 하기도 한다. [[http://www.huffingtonpost.com/2013/04/26/margot-woelk-hitlers-food-taster_n_3163447.html|아돌프 히틀러의 음식 검사관으로 고용되었었던 마르고트 뵐크의 말에 따르면, 주로 아스파라거스나 피망 같은 채소에 파스타나 쌀을 곁들여서 먹었다고 한다.]] 일단 이것들만 본다면 의외로 소박하고 같이 식사해도 괜찮을 듯 한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식사 시간에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하나였다. 일례로 2차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의 사령부 중 하나인 볼프샨체에서 히틀러의 수석 부관인 루돌프 슈문트가 국방군 지휘참모부의 장교 중 한 명이 매일 아돌프 히틀러의 저녁식사에 동석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젊은 장교들이 열광적으로 호응했는데, 같이 식사해보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바람에 그 규정의 발안자인 슈문트가 매일 저녁식사에 참석할 장교를 강제로 지정해야 했다. 왜냐면 앞서 말했듯이 일단 아돌프 히틀러가 소싯적부터 규칙적인 생활과는 한참 떨어진 [[니트]]적인 생활을 했으므로[* 히틀러의 가정부였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엘리자베스 칼하머가 인터뷰에서 밝히길 히틀러는 야간형 스타일로 밤이나 새벽까지 업무를 보다가 오후 2시 이전에 일어나는 일이 드물 정도로 늦잠을 잤다고 한다.] 저녁 시간이 일상인의 리듬과 전혀 맞지 않은데다가, 히틀러의 식단은 채소뿐이고 적게 먹는 데다 식사 자리에서는 금연이었으며 히틀러는 식사할 때 주로 혼자 떠들어대고 그와 식사하는 주위 사람은 인내하며 들어야 했다. 그런데 히틀러가 식사할 때 대화 주제로는 '개를 길들이는 방법', '로엔그린이나 파르지팔 같은 게르만족의 영웅이 나오는 바그너 오페라 이야기',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채식의 우월함' 따위였다. 게다가 혹여라도 정치적인 화제가 나오거나 전선에서 나쁜 소식이라도 전해지면 분위기는 금방 심각해졌고[* 여담으로 독일 고위관리의 부인이 "체포되어서 끌려가는 유대인들이 불쌍합니다. 어떻게 조치를 해주세요!" 라고 해서 분위기가 상당히 심각해졌지만 정작 그 자리에 있던 히틀러와 힘러가 그냥 웃으면서 분위기를 넘긴 사례도 있다.] 저녁식사 후 아돌프 히틀러는 몇 시간 동안이나 동석한 장교들을 앞에 앉힌 채 혼자서만 말을 해댔기 때문이다.[* 출처: 제프리 메가기, 김홍래 역, <아돌프 히틀러 최고 사령부 1933~1945: 사상 최강의 군대 아돌프 히틀러군의 신화와 진실>, P. 319, 서울: 도서출판 플래닛미디어, 2009. 영화 [[다운폴/패러디#s-4.6|다운폴]]에 이 장면이 비교적 잘 묘사되어 있다. 링크 참조.] 때문에 히틀러와 식사를 할 때는 정치적인 얘기는 금기였다. 아돌프 히틀러에게 [[결벽증]]이 있었다는 소문도 떠돌아다녔다. 근데 정작 [[케이크]]를 무지 좋아해서 치아 상태는 별로였다고 한다. 충치가 워낙 심해서 항상 치통을 달고 살았으며 나중엔 치아농양까지 발생해 잇몸이 내려앉아 버렸다. 그래서 치과의사 후고 블라슈케(Hugo Johannes Blaschke)한테 치료를 받았는데 이때 치료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나중엔 그의 치과 주치의로 임명된 블라쉬케를 피해다녔다고 한다. 그나마 3조각 이상은 절대 먹지 않았던 젊은 시절, 중년 초반 시절과는 달리 노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병적으로 케이크를 찾기 시작해 3접시를 한꺼번에 해치웠다. [[초콜릿]]도 굉장히 좋아하여 하루에 1kg에 달하는 양을 먹었으며 케이크, 파이, 과자도 초콜릿이 많이 든 것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과자와 [[크림빵]]도 좋아해서 즐겨먹었고 덕분에 자주 복통에 시달렸다. 이는 생모가 위암으로 죽은 [[가족력]]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거기다 채식을 하면 자연스럽게 육식을 안 하는 것에서 오는 부족함을 채우려고 단 음식을 많이 찾게 되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실제로 아주 특이한 상황이 아니면 육식을 거부하는 한국, 중국 스님들 사이에서도 단 음식을 좋아하는 스님들이 많다.(그 [[법정 스님]]도 아이스크림을 한 자리에서 3개씩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가 [[채식주의자]]라는 것에 관련된 몇몇 논란이 있으며, 영문 위키피디아에 [[https://en.wikipedia.org/wiki/Adolf_Hitler_and_vegetarianism|아돌프 히틀러와 채식주의]]에 관한 항목이 따로 개설되있다. 해당 문서에서 Ilse Hess, Fritz Redlich, Thomas Fuchs의 증언에 의하면 히틀러는 [[고기]], [[빵가루]], [[달걀]], [[채소]] 등을 섞어 뭉쳐 만든 간[[만두]] LeberKnodel을 항상 먹었다고 한다. 역사학자 Robert Paine는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다는 일화는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의 조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의 치아와 틀니에 존재하는 치석 퇴적물 분석에서 고기 섬유가 발견되지 않은 점, 히틀러가 사망한 지 사반세기가 넘었고 수십년간 학자들이 연구했는데도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 및 무엇보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noh0058&logNo=222455815142&navType=tl|히틀러의 식사를 검사하던 기미상궁 역할을 했던 여인이 일하는 동안 단 한번도 고기라곤 구경도 못해보았단 증언]]을 남겼으니 채식주의자가 맞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의 전담 주방장이 건강 악화를 우려해, 히틀러 몰래 감자죽을 끓일 때 뼈를 같이 끓여 우려내기도 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